[토미나스 행성, 은하 연방력 211년]
나르제네스가 부부로 보이는 토임 행성의 관광객을 태우고 연방력 1년 경의 유적지 ‘메르파툰’ 을 지나고 있었다. 부쩍 토임 행성의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구 은하 세력의 역사적 잔재를 탐방하기 위한 관광객은 아주 간신히 그들의 수입원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스! 이제 막 들어오는 중이야? 우린 나가려고! ”
루토는 어릴적 부터 나르제네스를 자기 멋대로 부르곤 했다. 나르제네스는 별명도 별명이거니와 미묘하게 텐션이 높은 루토가 귀찮았지만, 일일이 그를 떼어놓거나 별명에 관해 논쟁하는 편이 좀더 귀찮다고 생각하는 터였기에 어느샌가부터는 대충 나스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이제 막 들어가는 중! 피곤할텐데 기다리지 말고 들어가!!”
루토는 좀처럼 혼자 있는 법이 없었다.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더러 있었지만 루토의 종알거림을 묵묵히 들어주는 친구는 나스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상대적인 착각에 가까웠다. 나스는 언젠가부터 루토의 종알거림을 백색 소음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간간히 ‘음, 그렇지, 맞아’ 하는 등의 대답을 해주면 될 뿐이었다. 그런 대답들이 문맥과 상황에 맞는 대답인지는 고려 할 필요가 없었다. 루토의 종알거림은 심층 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구름을 한스푼 떠다 관광객들에게 팔면 좋아할텐데’ 라던지 ‘지나오다 주은 예쁜 돌맹이에 그린 그림이 예쁘지 않아?’ , ‘생각해보니 천년도 더 된 돌맹이 잖아?!’ 라는식의 이야기였다. 나스는 문득 루토 역시 그저 머리속에 지나다니는 백색 소음의 라디오 같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 전파나 잡아다 송출해버리는 약간은 정신나간 편집장 쯤으로 여긴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루토와 함께 있는 것을 반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덜 귀찮다는 것이 귀찮지 않다 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스는 토임 행성의 관광객들이 공간 촬영 장비까지 동원하여 유적을 촬영하는 동안, 멍하니 계약 되어있는 속도로 유적의 구석 구석을 비행 해 줄 뿐이었다.
비행이라 할 것도 없었다, 초전도 부상 도로 위에서 고작 4~5미터를 부유해서 나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구 시대적 기술 조차도 관광객들에겐 색다른 경험으로 여겨졌다.
그때였다.
‘경보! 경보! 모든 관광객 여러분 께서는 조속히 비상귀환 해주시기 바랍니다. 비상귀환 대상 지역은 서부 전선 유적 전지역입니다. 최단 경로 귀환 노선을 벗어나는 모든 부유선에 대해서 여행자 보험은 그 즉시 효력을 상실함을 고지합니다. 다시한번 알려드립니다. 경보! 경보 모든 관광...’
“무슨 일입니까?! 우린 가장 비싼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무슨일인이 알아야겠습니다.”
나스의 수신기로 토임족들의 언어가 토미나스 행성 언어로 번역되어 들려왔다.
“... 일단 진정하세요, 최단거리 귀환 노선이 모두 해제 되었으니 침착하게 귀환하면 됩니다”
나스는 지금껏 비상귀환 사태를 세번 겪었지만, 서부 전선 유적 전지역의 비상 귀환 같은 대규모 귀환 사태를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토미나스 행성은 소형 행성인만큼 정치적 안정성이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간간히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상당히 국소적이거나 몇몇 급진주의자들에 의한 것이었기에 보통은 한 두 구역 내지는 접경지역만 귀환 명령이 내려졌다.
따라서 나스 조차 이렇게 큰 규모의 귀한 사태는 처음 겪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아는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퉁!’
비상 귀환루트로 재설정한 부유사이클을 회전 시키던 찰나 사이클의 후면부 전자기 실드에 뭔가가 도탄되어 전방으로 뻗어나갔다.
“고개 숙이세요! 긴급 탈출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나스는 긴박하면서도 침착하게 속도 제한을 해제했다. 그래봤자 1.5배 남짓의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전자 탄환이 지나갔음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전자 탄환은 화약을 사용하는 탄환 같은 고전적 추진체가 아니었기에, 대기중에 ‘차자작’ 거리는 방전음만 남기며 발사되는 그 순간부터 마치 암살자 처럼 조용하게 대상을 파괴했다. 부유사이클이 꽤나 구식 모델이어서 다행히도 전자기 실드가 있는 모델이었기에 망정이지, 쥐도새도 모르게 신체를 관통 당할 뻔 한 순간이었다.
나스가 가속 핸들을 있는 힘껏 당기며 회피기동을 하기 시작하자, 사이클의 좌 우로 ‘타다닥’ ‘타다다닥’ 하며 방전음이 들려왔다.
‘촤아악!’
나스의 사이클 좌우로 전자 탄환이 떨어지며 도로가 푹푹 패이기 시작했다.
“무슨일입니까! 우린 토임 행성, 비스델 연방에 가입되어있는 사절단인거 알고 계십니까!”
“우리를 공격하는 행위는 비스델 연방을 향한 공격으로 간주될겁니다!”
토임족 부부의 다급한 외침과는 상반되는 감미로운 목소리의 번역이 나스의 귓가에 들려왔다.
“압니다! 저는 알죠! 근데 제가 공격하는게 아니라요...웃...차!”
나스가 간신히 탄환들을 피해가며 달아나는 동안 나스의 시야에는 토미나스 방위군의 부유선들이 보이고 있었다. 나스의 허접한 관광용 사이클과는 달리 자체 동력으로 우주 항행도 가능한 함선들이었다.
“부유선! 방위선의 실드 구역으로 달아나요!”
“뒤에 따라오고 있다구요!”
관광객들의 조급함이 느껴지는 훈수가 끊임없이 귀로 흘러 들어왔지만, 나스의 집중력은 그 어느때보다도 기민했다.
“거... 참!”
방위군은 AL21 급의 보험에 가입된 여행자들을 중심으로 출동 하는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여행객 두명이 타있는 부유사이클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빠르게 나타났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방위군은 엄호 사격을 하며 실드 구역을 전방으로 집중시켜 마주오는 나스의 사이클을 재빠르게 실드 범위 안에 들어오게했다.
‘차아악! 촤악!’
전자 탄환들이 방위군 실드의 전면부를 두드리며 촤악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살았다! 살았다! 내가 이 일을 연방에 보고할거요!”
“일단 빨리 스테이션으로!”
나스는 이들의 허세를 듣는 것이 우습지도 않았지만, 짧은 찰나 운명을 함께 했던 이들의 푸념이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했다.
방위군이 출격 준비를 마치고 곳곳에서 출격하기 시작했다. 몇몇 관광선들이 요격 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나스는 침착하게 차례를 기다려 스테이션 진입에 성공했다. 나스와 더불어 루토도 스테이션에 진입했는지 호들갑 스러운 무용담이 뒷편에서 들려왔다.
스테이션은 유일하게 은하 연방의 자산이었기에, 행성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유일한 방위군의 주둔지라는 뜻이기도 했다. 은하 연방은 자신들의 자산 만큼은 무섭도록 강경하게 지키는 집단인 만큼 잠시간의 소동은 금방 진정 될 터였다.
그러나 그런 나스의 바람과는 달리 상황은 조금 이상하게 흘러갔다. 방위군은 최소한의 주둔군 만을 유지한채 테러 집단과의 불가침 조약을 맺고 행성의 소유 자산을 안전한 행성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중대형 행성이나, 시장이 잘 갖추어진 문명에 비하면 토미나스 행성은 메르파툰 유적과 우주 개척시대의 구시대적 유적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자연경관이나, 관광 자원이 없었기에 은하 연방은 토르나스 행성의 사업성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판단 했던 것이었다. 더욱이 테러를 자행했던 집단은 피룬버 상단으로, 사실상 약탈 상단인데 이들의 수장이 쿠데타에 의해 현재의 수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피해를 끼친 은하 연방의 자산을 모두 일시에 상환하며 토르나스 행성의 주둔 권한을 거래해 버렸던 것이다.
이로써, 은하 연방은 돈이 되지 않는 대립을 멈추고 피룬버 상단과의 은밀한 거래를 이어가게 되었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피룬버 상단이 메르파툰 유적 인근으로 상업용 함선들을 전개하고 성곽 형태로 전함을 정박시키니 150척 규모의 전대임은 분명했다. 행성간 무역을 하고 있는 실력자들 중에서는 비교적 초라한 규모이지만, 우라노스급 전함을 두척이나 가지고 있었기에 이들을 토벌하는 것은 은하 연방의 입장에서도 타산이 안맞는 일이었을 것이다.
[토미나스 행성 메르파툰 유적 인근 피룬버 상단 마켓]
다소 격정적인 한 해를 보낸 토미나스 행성이었지만, 행성에 상단이 주둔 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 것이었다. 피룬버 상단이 세력을 과시하며 비록 변방의 작은 행성을 거점으로 삼고 있지만 은하 연방과의 대립각을 통해 인지도를 올린만큼 상단의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기에, 상단의 마켓으로 부터 흘러나오는 소비는 행성의 거주민을 불러모으기 충분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완전히 끊겨버린 상황에서 나스와 루토 또한 이곳을 기웃거리며 소일거리를 찾아 다녔다.
루토는 푼(과채류 식물, 미묘하게 달짝지근하고 새콤함)을 재배하던 아버지의 수송 장비를 물려 받았기에 간간히 상단으로부터 물자 수송에 관한 업무를 배정 받곤 했다.
“나스! 상단에서 한번만 더 수송물자 약탈당하면 우리 장비들 팔아버리고 우리를 노예시장에 팔아버리겠데 하핫”
공공연히 테러집단이 주둔하는 행성이었기에, 은하 연방으로부터 수배령이 내려진 온갖 범죄자들과 약탈자들, 스캐빈져와 현상금 사냥꾼이 모여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던 일이었다.
루토는 일전에 배정 받은 수송 물자를 대부분 약탈당하고, 간신히 수송선만 탈취하여 돌아왔었다. 상단에서는 이 일을 계기로 루토의 집을 몰수 해 버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토는 상단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었다.
“우리 장비라니, 약탈을 당하고 온건 루토 너 잖아”
“이제 같이 일할테니까! 하하핫 이제 나한테 빼앗아갈 물건이 없으면 나를 노예시장에 팔아 버릴거라구 그때는 니네 집 한번만 팔자”
루토의 정신 나간 농담에 나스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상단에서는 절대적으로 수송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렇게 칠푼이 들이라도 수송 임무를 배정했고 이로인해 약탈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위치가 추적되는 전자포 한 문 씩을 수송선에 배정 해주었다. 때문에 전자포 사수를 포함하여 수송선 운전수 까지 2인 1조로 운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전자포를 운영 하는 것은 이런 시골 행성의 심부름꾼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었지만, 루토와 나스에게만은 예외였다. 푼 농장을 운영하던 루토의 아버지는 무지막지한 스타일의 농부여서 은하간 배송으로 1메가 뢴트겐 단위의 전자포를 등대위에 설치해 푼을 뽑아 먹는 멧들을 터뜨려 버리곤 했다.
그러나 이 전자포를 다룰 줄 아는 사수가 없는 동안에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였기에, 루토와 루토의 아버지, 루토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나스와 몇몇 친구들 까지도 전자포운용을 배워 3교대로 멧들을 터뜨려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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